[파라노이드 통권 23호] 너무 빠르고 안타까운 상실, 신해철의 삶과 음악(1)
2004 ⓒ 전영애
신해철의 발인을 앞둔 지난 10월 31일 새벽 서울 아산 병원 장례식장 입구에는 고인의 팬들이 하나둘 모여서 작은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찬 공기 속에서 너무나 고즈넉했던 그 날 새벽은 작은 바람 한 줄마저 시야에 매섭게 다가왔다. 조그마한 스피커에서 나지막하게 소리를 내는 그의 음성에 맞춰 조용히 읊조리는 사람들의 눈가에는 평온함에 숙연함이 더해갔다. 그 속 그득한 슬픔을, 그 누구도 꺼내지 않은 채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일어나라 대한민국. 고인의 오랜 바람이었다. 그와 함께 했던 지난날처럼 우리는 또 하나의 결로 마주한 하루와 내일에 당당해져야 한다. 이제 떠났다. 그가... 신해철... 그가 우리를 맞이하러 먼저 떠났다.
신해철의 음악에 투영되었던 시대의식
10월 22일 갑작스런 심정지로 입원을 했던 신해철은 5일 동안 생사를 오가며 무의식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10월 27일 오후 8시 19분, 신해철은 가족은 물론 수많은 대중들의 바람과 희망의 소리를 간직한 채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이라는 사인으로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이제 고인이 된 신해철은 과거 방송된 한 프로그램에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영상으로 유언을 남긴 바 있다. 고인은 이 방송에서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고, 당신의 아들, 엄마, 오빠, 강아지 그 무엇으로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지성과 감성이 교차하는 가장 절대적인 뮤지션이자 가수였던 신해철의 음악은 대한민국 3040세대들에게 젊은 날의 동화였고 자화상이었다. 갑작스레 쓰러진 이후 아무런 교감도 없이 홀연히 떠나버린 고인이기에 우리는 그에게 적잖은 빚을 지게 된 셈이다. 그가 우리에게 찾아왔던 시작과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의 삶과 음악은 무엇이었을까.
고인의 죽음이 알려진 그 날 밤의 SNS는 오로지 ‘신해철’,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 했다. 6장의 솔로앨범과 넥스트 시절 6장의 앨범, 그리고 무한궤도 시절 발표되었던 한 장의 앨범, 윤상과 변진섭 등과 각각 함께 했던 조인트 앨범 등을 통해 그가 남긴 노래들은 음악이 흐르는 모든 공간에서 그의 꺼진 호흡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대에게’,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날아라 병아리’, ‘인형의 기사’, ‘집으로 가는 길’, ‘불멸에 관하여’, ‘재즈카페’, 그리고 ‘안녕’에 이르기까지. 사람들 각자가 듣고, 서로 다른 이들이 신청해서 공감하던 그의 노래는 모두 불후의 명곡이었으며, 시대를 대신하고 감싸 안았던 희망가였음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고인은 세상과 음악에 대한 이해심이 많은 뮤지션, 아니 아티스트였다. 급격하고 격렬하기도 했던 그의 성품은 시대에 의해 더해졌고 승화되어 나왔다.
새로운 단계에서 떠남으로 더욱 안타까운 죽음
솔로와 듀엣, 밴드 음악에 이르기까지 고인의 음악은 대한민국 그 어느 뮤지션보다 방대한 영역을 완성해 나왔다. 영화와도 적잖은 인연을 보였던 고인은 1991년 ‘하얀 비요일’에 참여한 이후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를 통해 첫 영화음악감독 작업을 맡기도 했다. 고인의 가장 열정어린 음악이 집결되었던 그룹 넥스트는 2006년 5.5집과 싱글 앨범 [666]을 마지막 앨범으로 정지된 상태였다. 유작이 된 여섯 번째 솔로앨범 [Reboot Myself 6th Part 1]는 무한궤도와 솔로 앨범의 종지부를 찍는 새로운 시야를 갖추며 발돋움하려던 [Myself] 앨범의 기운을 닮았다. 넥스트의 힘이었던 실험적인 요소와 뮤지션 신해철의 본질이었던 비판적 의식이 함께하는 타이틀곡 ‘A.D.D.A’는 분명히 신해철 음악의 새로운 화두였다. 그리고 ‘단 하나의 약속’은 그의 애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어 슬픔을 더한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만든 사랑 노래를 15년 동안 다듬고 매만져서 이제야 내놓게 되었다.”고 설명했던 고인은 자신의 부인에게 약속받고자 했던 바람이 오히려 자신을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바람이 될 줄 알았을까? 뮤직비디오 ‘A.D.D.A’와 ‘단 하나의 약속’을 보고 들어 보라. 이토록 극적인 유작이 있을 수 있을까? 고인은 새로운 변화를 선보이며, 그 다음 단계를 진행하고자 준비해 나왔던 순간에 세상을 등짐으로써 안타까움을 더한다.
고인의 음악과 인생, 그리고 삶에 대한 철학은 겉은 화려해 보였지만 끝없는 투쟁과 고뇌의 연속이었다. 창작자의 슬픔이 아닌 완성되지 못하고, 완성될 수 없는 인간 세상에 대한 아픔이었다. 고인은 유작 앨범인 [Reboot Myself 6th Part 1]의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 인간의 삶에 대해 의미 있는 말을 언급했다. “인간의 소명은 태어나는 것. 그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 지금 이 순간은 신이 우리에게 주는 보너스이다.” 믿고 싶지 않은 죽음이 적잖은 즈음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인의 음악에 경의를 표한다. 글 고종석
출처: https://www.paranoidzine.com/876 [PARANO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