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노이드 통권 23호] 너무 빠르고 안타까운 상실, 신해철의 삶과 음악(2)
WELCOME TO THE WORLD HE MADE
정기송, 임창수, 김세황, 데빈으로 본 신해철 음악의 변화
① 기타, 신해철 음악의 프리즘
본인도 인정한 바 있지만, 신해철은 그야말로 오지 오스본 못지않은 기타리스트 헌터였다. 건반과 전자악기가 그의 차가운 이성과 논리를 대변했다면, 기타는 그의 어린아이 같은 쾌락에 다름 아니었다. 훌륭한 기타리스트는 그의 음악에 있어 자신이 원하는 쾌락의 진동을 충분히 구현해야 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를 거쳐 간 기타리스트들은 당시 신해철이 원했던 음악적 쾌(快)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존재들이다.
정기송 신해철의 ‘트레버 레빈’
신해철은 한국형 ‘아레나 락’의 전형으로 불러도 좋을 법한 ‘그대에게’로 데뷔했지만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부르며 “여러분 사랑해요”를 속삭일 줄도 알았다. 정기송은 락이 대중음악의 가장 치열한 방법론임을 자각한 신해철의 음악세계를 잘 이해했다. 사운드와 연주 모든 면에서 그랬다. 그는 당시 선망의 대상이던 단정하고도 밀도 있는 디스토션 톤은 뉴웨이브적인 전자음이 강조된 건반과 잘 어울렸다. 그로 인해 두텁지 않은 중저음역대와 인위적인 고음 사이를 미끄러져 다니는 신해철의 목소리는 한층 독특한 개성을 갖게 됐다. 그러나 당시 신해철의 레퍼런스는 신쓰팝이라기보다는 예스(Yes)에 가까웠다. ‘외로움의 거리’, ‘Turn Off The TV’ 등의 곡을 들어보면 순간순간 긴박하게 터치는 리듬 스트로크에 방언처럼 확 펼쳐지는 기타 솔로 등은 연주로 표현할 수 있는 락의 모든 가능성을 끌어내려는 의도의 작법이었다. 정기송은 그런 신해철의 트레버 레빈이 돼 준 셈이다. 정기송과 신해철의 인연은 넥스트뿐만 아니라, 시인 유하의 감독 데뷔작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등에서도 이어졌다. 참고로 그는 핌프 락 스타일을 표방한 문희준의 음악을 프로듀스하기도 했다. ‘오인용’ 시리즈 등으로 락 팬이 아닌 전 국민들에게 폭격을 맞고 있던 문희준에게 “소주 한 잔 하자”며 신해철이 위로의 말을 건넨 것도 이런 인연 덕분(?)이 아닐까.
임창수 넥스트가 핑크 플로이드는 아니었다
“그가 코르그, 야마하를 합친 악기사의 대표가 된다 해도, 그가 가진 기타리스트로서의 재능에 비할 바는 아니다.” 신해철이 잡지 않았지만 가장 아쉬워했던 기타리스트로 알려져 있는 임창수. 정기송이 재기발랄한 편이었다면 임창수는 신해철의 작곡다도 더 공간감 있고 다차원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때로 진지하기까지 한 그의 연주는, 인기의 절정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불명예 제대한 신해철의 음악세계에 새로운 전기가 되어 준 것은 분명했다. 넥스트의 2집 [The Return Of The N.EX.T Part I: The Being](1994)은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재기하려는 신해철의 몸부림이 담긴 앨범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전작보다도 더 곡 전체를 지휘하려는 성향이 큰 앨범이기도 하며 이에 따라 약간의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The Dreamer’ 같은 곡에서처럼 임창수는 신해철의 조바심을 한 톤 낮춰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견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나 앤드루 래티머(Andrew Latimer) 같은 사색적인 면을 갖고 있기도 한 기타리스트다. 하지만 넥스트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였던 것은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위축되긴 했지만 신해철은 곧 ‘방방’ 뛸 날이 멀지 않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물론 임창수도 ‘껍질의 파괴’, ‘이중인격자’ 등의 곡에서는 스윕 피킹과 양손태핑을 활용한 테크니컬 플레이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 역시 군더더기 없고 멜로디 라인을 중심으로 수렴해 가는 방식의 연주이다 보니, 요점이 분명하긴 했지만 화려하게 좌악 펼쳐지는 느낌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혹자들은, 넥스트의 [The Return Of The N.EX.T Part I: The Being] 전체가 세션맨 이미지가 강했기에 이 한 장으로 임창수의 연주를 말하는 것은 무리라 보기도 한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연주적인 면에서나 사운드적인 면에서나 임창수가 보여주지 못한 것은 없다. 다만 바로 이어지는 앨범이 넥스트의 황금기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나온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후 임창수는 악기와 미디 관련 회사를 설립, 성공한 기업인으로 거듭났다.
김세황 넥스트를 사랑한 한국형 락 아이콘
신해철은 연주력만 좋은 기타리스트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진지한 문제의식을 다룬 곡들일지언정 무대에 섰을 때 사람들을 파티 분위기로 끌고 들어갈 수 있는 연주자를 필요로 했다. 김세황 역대 넥스트 기타리스트 가운데 그러한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연주자였다. 특히 연주와 액션이 조화된 연출력은 타고난 것이었다. 사운드적인 면에서도 락 키드들이 영웅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기표를 나름의 방법으로 소화해냈다는 점이 더욱 컸다. 요컨대 처음 만나는 한국형 락 아이콘이었던 셈이다. 락 스타들의 내한공연은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드문 일―인데다 거기 좌석까지 놓아야 한다는 희한한 규정까지―이었다. 막연하게나마 ‘본토 필’ 나는 기타리스트란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밴 헤일런(Van Halen)적 하모닉스라든가, 메틀 사운드를 내면서도 퓨전적인 리듬감과 모드 활용을 통해 세련된 연주를 동시에 펼친 그는 약관에 이미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됐다.
김세황은 신해철과 넥스트의 음악을 정말 ‘좋아한’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다. [The Return Of N.EX.T Part II: The World]나 [Lazenca: A Space Rock Opera]를 작업할 당시의 일화뿐만 아니라, 그 때를 회상할 때조차 그는 신해철의 음악적 의도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자신이 참여하지 않았던 1, 2집의 곡들을 실황에서 연주할 때의 몰입도를 보면, 신해철에 대한 그의 존경심이 느껴지곤 했다.
김세황은 팝적이거나 멜로딕한 사운드에만 능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금 넥스트 기타 사운드를 혼자서 맡게 된 [Trilogy 666]에서는 [Lazenca]의 ‘Power’ 같은 곡을 몇 배 확장시킨 부피감과 그루브로, 넥스트의 음악뿐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한 단계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즉 그는 신해철의 음악적인 아이디어와 진보에 대한 의지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독자적인 방향을 제시할 줄도 알았던 것이다. 누구 하나 없이 고인의 죽음을 애통해했지만 김세황의 눈물은 더욱 특별했던 까닭이다.
데빈 임창수의 트랜스포머?
김세황처럼 24세에 신해철에게 발탁된 기타리스트 데빈. 비트겐슈타인에서의 활동을 보면 그가 전위적인 면이 강한 연주자로만 알려졌지만, 넥스트의 이름으로 함께할 때는 메틀 기타리스트로서의 면모도 유감없이 선보였다. 뉴메틀적 그루브감에 스래쉬적 질주감을 더하는 방식, 거기에 주제선율을 충분히 제시한 후 터져 나와야 할 부분에선 고난도 프레이즈를 제시하는 방식은, 임창수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The Return Of N.EX.T Part III: 개한민국]과 2집 [The Return Of The N.EX.T Part I: The Being]을 같이 들어보길 권한다. 임창수의 감각이 앞선 것이기도 하지만, 데빈도 신해철의 못다 꾼 단꿈을 현대적으로 변신시켜 좋은 연주를 만들어냈다. 물론 데빈 쪽이 아무래도 시대에 따른 기술적 발전의 영향으로 미드레인지가 강하고 펀치감 있으면서도 정돈된 톤을 들려준다. 신해철은 음악 전체를 설계하는 사람이지만 연주자, 특히 기타리스트의 개성은 최대한 뽑아내는 음악가였다. 바꾸어 말하면 데빈의 개성 역시 신해철과도 잘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김세황을 제외하면, 비트겐슈타인을 포함해 데빈이 신해철과 활동한 시간은 2000년대 들어 가장 많았다. 다만 밴드 넥스트의 멤버로서 데빈은 그 실력에 비해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락 뮤지컬에 출연하는 등 다양하게 활동하긴 했지만, 음원을 중심으로 소비하는 풍토에서 더 이상 큰 공연을 치를만한 ‘빅 밴드’가 나오긴 쉽지 않았다. 신해철의 다양한 미디어 포섭 능력조차도 너무 급변하는 시대에 브레이크를 걸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셈이다. 물론 2006년 11월 넥스트 탈퇴와 더불어 다소 잡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신해철이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지만 않았던들, 신해철과 더불어 조금 더 보여줄 것이 남아 있었을 연주자다. 글 한명륜
신해철 음악에서 가사의 중요성
② 가사, 신해철 음악이 던지는 화두
그의 가사는 이전에 보기 힘든 사회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한편, 자아를 향한 고뇌를 멈추지 않았으며 한국어를 모국어로 둔 보컬리스트로서 많은 고민을 표현하기도 했다.
신해철 그리고 그가 몸담았던 넥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프로젝트에서 그는 이전까지 한국에서 만나보기 어려웠던 ‘서사’와 ‘함축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그의 음악을 듣는 이로 하여금 오래도록 고민할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의 실질적인 공식 데뷔작인 무한궤도의 유일한 앨범에서 성공을 거둔 ‘우리 앞에 삶이 끝나갈 때’ 와 같은 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의 / 후횐 없~노라고’와 같은 철학적인 문장을 발견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아를 향한 질문은 신해철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내용으로 넥스트의 2집 [The Return Of N.EX.T Part I: The Being]에 수록된 ‘The Ocean’의 가사를 살펴보면 ‘그대여 꿈을 꾸는 가 /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 가 / 사라져 가야한다면 사라질 뿐 / 두려움 없이’와 같은 가사가 발견 되며, 이어지는 앨범 3집 [The Return Of N.EX.T Part II: The World]에 수록된 ‘Question’ 에는 ‘내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 나는 무엇을 보았고 또 느껴야 하는 가 / 내게 다가올 그 날이 오면 / 나는 무엇을 찾았다 말해야 하는 가 / 세상을 알게 될수록 / 내 무거워진 발걸음은 / 아직 내가 걸어야 할 남은 세월을 / 두렵게 하네’라는 고뇌하는 화자가 등장한다.
이러한 자아를 향한 고뇌 외에 신해철이 만들어낸 가사의 의미는 바로 사회를 향한 문제를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 문제의식은 좀 더 개인적인 성향을 띄었던 신해철 솔로에 비해 넥스트와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밴드에서 자주 드러나는데 ‘이중인격자’ 나 ‘Money’, 당시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힘겨워 하는 연인들을 위하여’와 같은 곡에서는 날카로운 주제의식을 지향하면서도 단순히 분노를 표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들이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지적하고 있었다.
또 신해철에게는 성공한 락 뮤지션이 된 다음에도 자신이 뮤지션을 동경하던 키즈 시절의 감성이 남아 있었는데 그와 같은 감성을 잘 담아낸 가사로 넥스트 1집 [Home]과 리메이크 앨범 [Regame]에 수록된 ‘영원히’를 꼽을 수 있겠다. 특히 2절에 등장하는 ‘처음 기타를 사던 날은 / 하루 종일 쇼 윈도우 앞에서 / 구경하던 빨간 기타 / 손에 들고 잠 못 잤지’ 라는 가사는 아직도 가슴속에 락을 향한 꿈을 간직하고 있던 수많은 락 키즈들에게 오래도록 남았다.
앞서 언급한 가사의 주제의식을 떠나 신해철의 가사는 보컬리스트로서 어떻게 발음과 각운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그의 솔로 2집 앨범 [Myself] ‘내 마음 깊은 곳에 너’에서 반복되어 등장하는 문구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를 살펴보면 내/ 마음/ 깊은 곳에/ 너 와 같이 멜로디의 전개, 박자에 따라 각운이 떨어지기 때문에 곡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더욱 부각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만약 내 마음/ 깊은 곳/ 에 너 와 같이 각운이 이루어졌더라면 원곡이 가지고 있는 의미 전달이 자연스럽지 못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고음역과 같은 부분에서 용이한 발음 등 뮤지션 신해철은 단순히 좋은 곡을 만드는데 고민했던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보컬리스트로서도 많은 고민을 했었고, 그와 같은 고민들을 실제 자신의 작품에 담아냄으로서 그의 뒤를 이어갈 많은 뮤지션에게 하나의 방향을 제시 했다. 모쪼록 그가 만들어낸 위대한 시어(詩語)들이 오래도록 살아 숨쉬길 바라며. 글 ShuhA
출처: https://www.paranoidzine.com/876 [PARANO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