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궤도 3편
당일 날 리허설, 나는 MBC엔지니어들이 포진한 콘솔로 가서 내가 원하는 사운드를 좌~악 브리핑한 후 몇 개의 페이더를 내 맘대로 조정해 놓고 휭하니 밴드 스테이지로 돌아왔는데, 건방지다고 갈굼 살벌하게 당했다.
당시 무대 배치는 체육관 센터에 거대한 메인 스테이지가 있고 그 한가운데에서 솔로 가수들이 고목나무에 붙은 모기 폼으로 노래를 하고, 밴드 스테이지는 메인 스테이지의 20분의 1사이즈로 한 쪽에 찌그러져 있었는데 드럼 셋트와 엠프 사이에서 설 자리를 찾아 헤매야 했다.
게다가, 솔로들의 마이크는 듣도 보도 못한 고급품인데 비해 밴드 싱어의 마이크는 이럴 수가…3만원짜리 오디오 테크니카가 아닌가…(지금 가정용 오디오 마이크가 그거보단 낫다.) 한술 더 떠, 무대위에 모니터 시스템이 용량이 너무 적어 우리가 연주하는 소리보다 체육관벽에 부딪쳐서 돌아오는 소리가 더 큰 거였다.
몸살은 났지, 배에 힘은 없지, 목은 쉬었지, 빽빽 소리 지르고 노래 해봐야 내 목소린 하나도 안 들리지… 정말 최악의 스테이지였던 것 같다. 당시 무한궤도 보고 스테이지 매너가 너무 노련해서 아마추어 같지가 않다 라는 평들이 있었는데, 아마 몸살 안 난 상태에서 우리를 메인 스테이지위에 올려 놓았으면, 좌로 뛰고 우로 뛰고 완죤히 지랄이 났을 거다.
사회는 이택림, 김은주 였고 (당시 나는 김은주 아나운서를 보고 뿅 가서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엔트리 1번 부터 대학가요제가 진행 되었다. 우리는 엔트리 16번..꼴번 이었는데 우리는 속으로 불만이 대단했다.
우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참가자가 발라드 넘버여서 우리 순서까지 관객이 집중력이 유지 될 거라고 도저히 생각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무대는 한 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지, 참가 번호는 꼴번이지, 정말 찬 밥 한번 제대로 먹어 본다고 생각했다.
15번이 노래를 하는 동안 우리가 밴드 스테이지에 올라가 준비를 시작했다. 체조 경기장에 꽉 찬 관객들의 소리와 무대 스피커의 굉음 사이에서 혼이 반쯤 빠져 악기들의 전원을 넣었는데 내 재산 목록 1호 쌤플링 키보드에서 bad data disk…하는 사인이 뜨는것이 아닌가…
전에도 한두 번 겪은 적이 있는 일로 당시 쌤플리 키보드는 로딩 시간이 너무 길어 엑스 7000은 퀵 디스크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빠른 대신 디스크가 불안정 하여 내용이 자주 손상되는 것이었다.
빽업 디스크를 미리 준비 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전 날 너무 탈진해 잠들어 버린 것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거다. 손상된 디스크가 다시 돌아올 리 없건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로딩을 되풀이 하는 동안 15번의 노래는 거의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밴드의 음악적 리더와 스테이지 리더는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데, 당시 나는 음악적 리더 보다는 오히려 스테이지 리더에 가까웠다.
당시로서는 복잡한 편이었던 무한궤도의 셋업을 3분내로 해치워야 하는데 사고가 해결이 되질 않으니 모든 준비를 맴버들에게 일임해 버리고 나는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는 속담처럼 작살 난 디스크를 만지고 있었던 거다.
여기서 해철이의 비겁함이 나온다.
성당에 안 나간지 몇 년이나 되었건만, 나는 그 와중에 번개 같이 (정말 빠른 속도로) 주기도문, 성모송, 사도신경을 암송한 뒤 30년 내로 성당 하나 지어드리죠…라는 아부성 멘트를 날리고 키보드를 있는 힘껏 움켜잡은 뒤 온 정신을 집중 하여 디스크를 넣었다.
내 평생 어떤 일에 그렇게 강렬하게 집중해 본 적은 지금껏 없었을 것이다…
loading…이라는 사인이 보이고…사운드가 입력 되었다.
나는 살아있는 주 예수의 증거를 드디어 보는 구나..하고 감격했지만, 감격할 시간이 없어서 맴버들에게 다시 침착하게 돌아온 내 표정을 확실하게 보여준 후 (서로의 표정을 확인한 것은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다.) 밴드 스테이지로 올라온 김은주 아나운서를 맞았다.
몇 마디의 인터뷰 후…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고 관객들은 지쳐 있었지만, 체육관 전체는 완전히 우리 것이 되었다.
200명쯤으로 추산되는 우리 친구들이 폭죽을 터뜨리며 바람을 잡았고 첫 공연 이후 결성되어 있었던 수십 명의 소녀 팬클럽도 가세했으며, 또한 운이 엄청 따랐던 게 당일 날 체육관에는 88올림픽 때 사용했던 조명 시스템이 아직 렌탈 기간이 남아 있어 그대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앞서 말했듯이 15명의 발라드 엔트리 들이 노래를 하는 동안 심심해서 하품을 하고 있던 조명 기사가 옳다 꾸나~~전부 돌려 부러~~ 로 모든 조명 시스템을 풀로 올려 버린 거다.
마치, 이 행사의 메인 밴드이자 엔딩 인 듯 한 분위기가 자동빵으로 연출되었음을 나중에 화면을 보고 알았다.
(후일담인데 당시의 심사위원장은 조용필 전하였다. 게다가, 쟁쟁한 프로듀서들이 포진해 있었는데 이 양반들이 모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이었던 거다.
조용필 사단으로 도배된 심사위원석에서 전하께옵서는 거의 꾸벅꾸벅 조시다가 그대에게의 인트로를 알람시계로 착각, 깨어났는데 나중에 보니 기억나는 게 우리밖에 없더라는 거다.
채점지를 걷는 순간, S모 편곡자 왈, 형..어떡하지??
전하 왈, 야..우리가 보컬인데…보컬 줘라..보컬…
L모 편곡자 왈, 그래..그래..그 새끼들이 좀 시원 했어…
이리하여, 강력한 대상 후보 주병선을 정말 간발의 차이로 돌리고 대상이 우리에게…하늘에서 떨어졌다.)
후주가 끝나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대기석으로 돌아가는데 관객석에서 흥분한 사람들이 체육관 바닥 쪽으로 넘어 들어오며 사인을 받는다..사진을 찍는다..소동을 부렸고 경비원과 경찰들이 우리 쪽으로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예전에 한번 겪은 일을 다시 재현하는 듯 한 확실한 기분으로 대상이로구나…해냈다…라는 것이었다.
강변 가요제 출전 당시 이상은이 대상을 타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었는데 결선까지는 거의 구색용 노래의 분위기였던 것이 당일 날 관객들이 열광하고 이상은에게 소녀들이 몰려들어 난리를 치자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이상우가 금상으로 떨어지고 이상은이 냉큼 대상을 집어가는 것이 아닌가.
기석에 앉아서 은상을 발표할 때까지 우리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떨어지던가, 대상이던가 둘 중의 하나인 분위기였던 거다.
대상 무한궤도라는 이택림씨의 외침 순간 껑충껑충 뛰었던 사람은 내가 아니고 베이스 조형곤이다.
머리 스타일과 복장이 거의 유사해 그게 나였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매우 거만하게 터벅터벅 무대위로 밴드의 맨 뒤에 서서 의당 받을 걸 받는 다는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대학가요제의 대상쯤으로 내 기뻐하는 얼굴을 남에게 보일 순 없다는 엄청난 교만감도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대학 가요제는 끝이 났고 기뻐할 힘도 없이 완전히 지친 우리는 체육관 밖에서 서로를 황당한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다가…내일 보자…하고는 해산했다.
전원 귀가 후 시체처럼 잠들었는데, 아침에 현찬에게 전화가 왔다.
어제 일이 꿈이 아니고 사실인 게 맞냐는 것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우리는 서로 볼을 꼬집으며 지냈다.
대학가요제 에피소드의 엔딩은 이렇다.
난 트로피를 들고 집으로 귀가했다.
집은 온통 불이 꺼져 있었고, 초상집 분위기였다.
아부지 왈, "……우짜면 좋노…"
어머니 왈, "그러게요…(침울)…대상씩이나 타버렸으니…"
"이제는 더더욱 말려지지도 않을 테고…
두 분은 인생 만사 새옹지마라고 내가 상을 탄 것이 내 인생 말아먹을 흉사의 조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삐거덕~) 저..왔어요.."그래…""저..대상 탔어요.."
"그래… 티비 봤다…(마지못해) 수고 했더구나…자라…"
"…네…"
이것이 88년 MBC대학 가요제 대상 수상 및 대학가요제 1회 이래 십수 년만의 밴드 그랑프리 탈환에 대한 울 엄마 아빠의 공식반응이다.
젠장…다른 집은 엄마 아빠가 이쁘다고 뽀뽀도 해주고 맛있는 것도 사줬단다.…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