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말에서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학가요제》에서의 입상은 곧 가요계 입문을 의미했다. 무한궤도가 대상을 받았던 당시 심사위원석에 자리했던 조용필의 지원 사격에 힘입어 밴드 멤버를 유지한 채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히트시킨다. 1년도 되지 않은 채 밴드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해체되었지만, 별도 계약을 맺어둔 대영기획의 선견지명(?)으로 솔로 앨범을 발표하게 된 신해철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프로듀싱'한다. 크레딧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모든 음악적인 부분은 신해철 자신이 직접 만들었고 세션에 한해서만 도움을 받은 것이다.
가요계가 '노래되고, 얼굴되는' 남자 가수에게 원한 것은 괜찮은 외모 뒤에 숨겨진 남자다움, 그리고 어른스러움이었다. 이는 신해철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곱상한데 싸가지 없는 분위기' (《승승장구》 신해철편) 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를 통해 선보인 음악은 남자다운 모습 속에 방황과 갈등의 혼재, 나아가 분열하는 자신의 모습을 갖춰진 틀 안에서 담아내었다.
또한,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주류 가요 시장이 신인 가수에게 요구했던 것은 대중성과 실험성이 양립하는 이중적인 모습이었다. 흔히 댄스와 발라드를 기본 베이스로 하되, 당대에 유행했던 장르의 음악도 다루는 것. 그러니까, 유행에 뒤쳐지지는 않은 채 - 표면적으로는 아웃사이더의 형태를 띄지 않으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을 원하는 것이다.
신해철은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와 「안녕」을 통해 시장이 원하는 역할을 충족하는 판을 깔아놓는 척 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이 갖는 지향점과 대중이 기대하는 지점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고뇌를 「연극 속에서」 와 「고백」 같은 곡 속에서 녹여낸다. 이후,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세계는 다음 앨범 『Myself』를 통해 서서히, 구체적으로 본 모습을 드러낸다.
출처 : 음악취향Y(http://musicy.kr/?c=review&s=1&gp=1&ob=idx&gbn=viewok&ix=4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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